빈 문서 앞에 앉아 제목만 10번 고치고, 첫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 중요한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느껴지는 그 무게감과 비효율성. "내 말을 어떻게 하면 명확하게 전달할까?"라는 불안이 오히려 글쓰기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는 종종 '영감'이나 '재능'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진짜 문제는 '글쓰기'를 체계적인 '문제 해결 과정'으로 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 해답은 의외로 '글쓰기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 속에 있습니다. 이 책들은 화려한 문학적 표현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장의 공학'과 '구조의 논리' 를 가르칩니다. 오늘은 그 고전들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글쓰기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분석 프로젝트' 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프로젝트 1단계: '쓰기'가 아닌 '말하기'에서 시작하라 - 초점의 전환
글쓰기 고전의 첫 번째 교훈은 간단합니다. "글은 기록된 말이다." 당신이 빈 문서를 마주하고 막막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상대방(수신자)이 당신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고, 그에게 말하듯이 생각을 구두로 표현해보세요.
이때 핵심은 완벽한 문장을 구성하려 들지 말고, "자, 여기서 중요한 건 세 가지야. 첫째는..." 이라며 핵심 포인트를 말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녹음하거나 빠르게 필기하세요. 이 '말한 기록'이 바로 당신의 초고입니다. 고전은 글쓰기의 출발점이 '빈 페이지'가 아니라 '머릿속의 대화' 임을 일깨워줍니다. 이 전환만으로도 글쓰기의 정체 시간이 크게 줄어들 거예요.
프로젝트 2단계: '무엇을' 전하는지가 아니라 '왜' 전하는지부터 정의하라 - 목적의 발견
막막함의 또 다른 원인은 목적 불명확성입니다. 글쓰기 고전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을 알게, 느끼게, 또는 하게 만들고 싶은가?"
다음 글을 쓰기 전, 문서 상단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적으세요.
예시 (결제 연장 요청 메일):
나쁜 목적: "결제를 연장해달라고 말한다." (너무 추상적)
훌륭한 목적: "고객이 1) 우리 서비스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2) 연장 절차가 간단하다는 걸 알고, 3) 부담 없이 '연장하기' 버튼을 클릭하게 만든다."
이 명확한 목적이 당신의 글에 '중력'을 부여합니다. 모든 문장, 모든 단락은 이 목적을 향해 끌려가게 되어, 불필요한 장식이나 논점 이탈을 자연스럽게 걸러냅니다. 고전은 글쓰기가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독자 변화 유도' 라는 전략적 행위임을 상기시킵니다.
프로젝트 3단계: '명사'의 무게를 버리고 '동사'의 힘을 찾아라 - 문장의 해체와 재조립
비즈니스 글을 느리게 만드는 주범은 '명사화'된 추상적 언어입니다. '~화', '~성', '~적'으로 끝나는 단어들, 그리고 '~에 의한', '~를 위한' 같은 번잡한 표현들이 글에 힘을 빼고 이해 속도를 늦춥니다.
글쓰기 고전을 읽으며, 저자들이 어떻게 이런 '무거운 명사'를 '가벼운 동사'로 해체하는지 관찰하세요. 그리고 당신의 초고를 같은 방식으로 수술해보세요.
수술 전: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팀 내 커뮤니케이션 효율화가 요구됩니다."
수술 후: "프로젝트를 원활히 진행하려면, 팀원들이 효율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두 번째 문장이 더 직접적이고 힘이 있지요? 이 '동사 중심 사고'는 단순한 표현 바꾸기가 아닙니다. 이는 생각 자체를 더 명확하고 실행 가능한 형태로 압축하는 '인지적 운동'입니다. 고전은 단어 선택이 사고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프로젝트 4단계: 글의 '뼈대'를 드러내라 - 구조의 가시화
긴 글을 쓸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전체를 한꺼번에 써야 한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전은 글쓰기의 80%는 구성(아웃라인) 잡기라고 말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헤드라인 아웃라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글의 전체 흐름을 가장 거친 수준의 헤드라인(문단 제목)만으로 먼저 구성하세요.
상황: OO 프로젝트 지연과 그 영향
원인 분석: A, B, C 세 가지 요인
제안하는 해결책: X 방안 (장점)
다음 단계: 당신의 승인과 우리의 실행 계획
이 뼈대가 잡히면, 이제 각 헤드라인을 한 문단씩 채우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마치 건축가가 도면을 완성한 후 벽을 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전은 글쓰기를 선형적 창조가 아닌, 구조적 채움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해줍니다.
프로젝트 5단계: '편집자의 눈'으로 마지막 10%를 완성하라 - 잔인한 삭제의 미덕
글쓰기 고전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글을 다 쓴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는 점입니다.
초고를 완성한 후, '편집 모드'로 전환하세요. 이때의 질문은 "무엇을 더 넣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빼도 의미가 전달되는가?" 입니다. 각 문장, 각 단어가 정말 필요한지, 더 짧게, 더 명확하게 쓸 수는 없는지 잔인하게 검토하세요.
불필요한 형용사/부사를 제거하라.
긴 문장을 두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라.
'~입니다', '~하는 바입니다' 같은 군더더기 종결어미를 정리하라.
이 삭제의 과정이 글에 속도와 힘을 불어넣습니다. 고전은 간결함이 단순함이 아니라, 정련된 농축물임을 일깨워줍니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산물은 '빠른 글'이 아니라 '자신 있는 글'입니다.
이 5단계 프로젝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빈 문서에 대한 공포보다는 '해결해야 할 전달 과제'에 대한 명확한 접근법이 먼저 떠오르게 될 거예요.
다음에 이메일을 작성할 때, 서론을 쓰기 전에 먼저 '목적 문장' 한 줄을 적어보세요. 그 작은 행동이, 당신을 수동적인 '글쓰기 고통받는 자'에서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 설계자'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거라고 약속합니다. 고전의 지혜는 오래되었지만, 명료한 사고와 전달에 대한 갈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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