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뉩니다. 힘든 감정이 올라오면 일단 눌러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거나, 반대로 그 감정을 곧바로 행동으로 쏟아내는 쪽이죠. 두 방식 모두 당장은 편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문제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누른 감정은 어딘가에 쌓이고, 즉각 쏟아낸 감정은 관계나 판단에 흔적을 남기니까요.
이런 두 극단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하는 책이 있습니다. 예일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수전 데이비드(Susan David)가 쓴 《감정이라는 무기》예요. 원제는 《Emotional Agility》로, 201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고 국내에는 이경식 번역으로 2017년 북하우스에서 소개됐습니다. 오늘은 이 책이 말하는 감정적 민첩성이라는 개념과, 책이 제시하는 네 단계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감정을 억누르지도, 무조건 따르지도 않는 이유
데이비드는 감정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포장하려는 태도도,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려는 태도도 결국 같은 함정에 빠진다고 봅니다. 둘 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어떻게든 통제하거나 회피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책이 제안하는 감정적 민첩성은 감정을 없애거나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보를 담고 있는 신호로 다루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저자 수전 데이비드는 어떤 연구를 해온 사람일까요
수전 데이비드는 감성지능(EQ) 개념을 처음 정립한 심리학자 중 한 명인 피터 샐로베이와 함께 예일대학교에서 감정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하버드 의과대학 심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매클린병원 산하 코칭 연구소(Institute of Coaching)의 공동 설립자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 책이 나온 이듬해인 2017년에는 같은 주제로 TED 강연 〈감정적 용기의 선물과 힘〉을 진행했는데, 이 강연은 TED 공식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 민첩성, 네 단계로 정리합니다
책의 핵심은 감정을 다루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데 있습니다.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 단계 | 원어 | 핵심 내용 |
|---|---|---|
| 1. 마주하기 | Show Up | 지금 느끼는 감정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
| 2. 거리 두기 | Step Out | 감정이 나 자신이 아니라 지나가는 경험임을 확인하기 |
| 3. 가치를 향해 걷기 | Walk Your Why | 감정 너머 자신이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짚어보기 |
| 4. 다시 나아가기 | Move On | 그 가치에 맞는 아주 작은 행동을 실제로 옮기기 |
첫 단계, 감정에 이름부터 붙이는 이유
책에서는 대략 이런 취지로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냥 스트레스받아"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실망, 억울함, 걱정처럼 서로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감정을 더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할수록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감정을 억지로 밝게 포장하지 않고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 이게 첫 단계의 핵심입니다.
감정과 나 사이에 약간의 틈을 만드는 연습
두 번째 단계인 '스텝 아웃'은 감정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연습이에요. "나는 불안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처럼 표현을 살짝 바꿔보는 방식이 자주 소개됩니다. 이 작은 언어의 변화만으로도 감정이 나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감정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위치로 옮겨갈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알아차림의 감각은 감정 조절 방법 5가지에서 다룬 여러 전략들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치를 향해 걷는다는 것, 워크 유어 와이
세 번째 단계는 감정 자체보다 그 감정 너머에 있는 가치를 짚어보는 과정입니다. 화가 났다면 그 화 밑에 어떤 가치가 침해당했다고 느꼈는지, 불안하다면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인지 물어보는 식이에요. 데이비드는 목표(goal)와 가치(value)를 구분하는데, 목표는 도달하면 끝나지만 가치는 방향처럼 계속 따라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방향을 붙잡는 일이 왜 자주 흔들리는지 궁금하다면 전념이 어려운 이유에서 다룬 내용도 함께 참고할 만해요.
마지막 단계는 다시, 아주 작게 움직여보는 것
네 번째 단계인 '무브 온'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관계에서 느낀 서운함을 확인했다면, 큰 결단을 내리기보다 상대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해요.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걸음부터 옮기는 쪽이 실제 변화로 이어진다는 게 이 단계의 요지입니다.
이 책이 다른 감정 관리서와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
시중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다룬 책이 이미 많지만, 이 책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과는 거리를 둡니다.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굳이 없애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쪽에 가깝고, 그 감정을 어떻게 정보로 활용할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다만 이 책 역시 자기계발서 성격의 대중서이지, 심리치료를 대체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불안이나 우울감이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책의 방법론과는 별개로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황을 짚어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완벽하게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기보다, 감정과 조금 다르게 관계 맺는 연습이라는 게 이 책이 남기는 메시지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느낀 감정 중 하나를 골라 정확한 단어로 이름을 붙여본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출처
- Susan David, 《Emotional Agility: Get Unstuck, Embrace Change, and Thrive in Work and Life》, Avery, 2016 / 국내 《감정이라는 무기》, 이경식 옮김, 북하우스, 2017 — 알라딘 도서 정보
- Susan David, "The Gift and Power of Emotional Courage," TED, 2017 — TED
- 예스24, 《감정이라는 무기》 도서 정보 — yes24.com